대구 중구는 근대 문화를 기반으로 한 골목 문화가 잘 정비된 곳이다.
대구 중구청은 2008년부터 관내 명물거리와 골목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렇게 구는 역사와 스토리텔링이 곳곳에 산재한 특성을 살려 관광테마로 엮으며 근대시기의 정취를 한껏 살린 골목길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공들여 완성한 ‘골목투어’는 현재 다섯 가지 특색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관광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구의 ‘골목투어’는 이제 전국적인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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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공원은 대구 골목투어의 시작점이다.2
경상감영공원에서는 징청각을 만나볼 수 있다.골목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경상감영공원 내에는 과거 경상감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대구유형문화재 제1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관아건물이던 이 정청은 1601년(선조34년) 경상감영을 대구로 이전하였을 때 응향단 등 여러 채의 건물과 함께 지어진 것이다.
특히 선화당은 1966년 경상북도 청사가 산격동으로 이전하고 난 후 4년 뒤 중앙공원 조성 때 보수한 것인데, 이는 400년 전 실존했던 건물이라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공원 역시 그 터를 영구히 보존하자는 취지로 1970년에 첫 문을 연 것이다. 경내에는 처소인 징청각(대구유형문화재 제2호)과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27기)뿐만 아니라 정돈된 잔디광장, 분수, 산책로와 벤치 등이 마련되어 조용한 휴식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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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로에는 달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4
달성공원 내에서도 관풍루의 아름다움은 널리 사랑받는다.달성공원로에 위치한 대구달성(達城, 사적62)은 경주의 월성처럼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높이는 일정치 않으나 4m 정도에, 둘레는 약 1,3㎞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 초기 성곽의 전형이자,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 있어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아울러 성벽의 아랫부분에서 철기시대 초기의 조개더미와 각종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이 지방의 중심세력이 성장하여 초기적 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서남쪽으로 연결된 구릉지대에는 돌방무덤(석실분)이 많이 흩어져 있고, 무덤에서 금동관을 비롯한 다량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지금의 대구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대구달성 근처에 위치한 대구향교는 1398년(태조7) 교동에 처음 창건됐다 임진왜란 소실 등을 이유로 193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곳에 영남 각지에서 유림들이 모여들어 공자를 비롯한 5성과 동방 20현의 신위를 모셔놓고 연 2회 석전(釋奠)을 지낸 대구향교재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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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블레어 주택은 1910년 경 지어졌다.6
각 선교사들의 주택 내부에는 근대에 관련된 전시물들이 있다. 사진은 블레어 주택의 내부 모습.선교사블레어주택, 선교사스윗즈주택, 선교사챔니스주택, 성유스티노신학교(대구문화재자료23) 등 또한 대구 중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 이곳에는 근대로 가는 시간여행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저항시인 이상화 선생이 임종 때까지 시작(詩作)에 몰두했던 고택이 계산성당과 매일신문사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상화 고택 마당에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과 애환이 서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가 놓여 있다. 달성공원에도 암울했던 시절 봄이 오기를 노래한 선생의 또 다른 시비 ‘나의 침실로’가 있다. 모두 일제강점기 우리네 정서가 한껏 투영시켜 노래한 시다. 고택 마당에는 선생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펌프와, 방에는 책상과 의자 등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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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스윗즈 주택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되어 있다.8
선교사 챔니스 주택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5호다.그런가 하면 계산동에는 천주교를 영남지방에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대구계산동성당(사적290)이 자리해 있다. 1918년 증축된 이 계산성당은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돼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됐고,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가 임명된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성당 인근 관덕정(觀德亭) 순교기념관에는 을해•정해•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 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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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의 고택이 남아 있다.10
이상화 시인 고택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사적 제 290호인 계산성당이 자리하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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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안에는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대구의 여러 공원 가운데 1905년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공원이자 시민들과 가장 친근한 공원인 달성공원은 1965년 대구시 계획에 의해 새로이 조성됐다. 경내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는 선화당의 남쪽에 포정문을 세우고 그 위에 문루를 만들면서 세운 것이다. 공원 안에는 잔디광장, 종합문화관, 동물원 외에 이상화 시비 등과 같은 기념물도 있다.
아울러 대구에서 1907년 발생한 국채보상운동의 시민정신과 더불어 이른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 불리는 IMF 경제난 극복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12월 조성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현재 도심지 내에 녹지공간과 시원한 분수, 정자, 아름다운 석조물 등 조경과 어우러져 시민의 안락한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이밖에도 경내에서는 청소년 놀이마당, 음악회, 전시회 등 시민들의 다양한 어울림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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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때의 민족운동가인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이상화 고택 인근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서상돈 선생의 고택도 있다. 이곳에서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 보장 및 참정권 획득 운동을 전개했던 선생의 대찬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서상돈 고택은 주변 지역 개발로 허물어질 뻔한 것을 시민들이 직접 모금운동을 전개해 지켜낸 곳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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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거리는 봉산미술제의 장이 되기도 한다.봉산문화거리는 서울 인사동거리에 비견되는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거리로 198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현재 60여 개의 화랑과 화방, 골동품점, 표구사 등이 들어서 있다. 초기에는 미술 관련 재료를 판매하거나 표구 제작, 동양화 판매 등이 위주였지만 여러 화랑에서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 판매하면서 이제 중구를 넘어 대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매년 4월에는 개최되는 봉산도예전과 10월에 개최되는 봉산미술제도 볼거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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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의 약령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2
약령시장 안에는 약령시 한의약 문화관이 건립되어 있다.이상화 고택과 인접해 있는 남성로 약전골목은 최근 ‘근대골목투어’로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 약령시는 조선시대부터 전국적으로 이름난 약재시장으로 전성기 때에는 일본과 중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번성하였다. 이러한 면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곳 약령시한의약문화관이다. 대구약령시의 명성을 되살리려는 목적에서 대구시가 1993년 설립한 것인데, 전시실에는 인삼, 산삼, 녹용, 해마 등 각종 한약재를 비롯하여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등 한의서와 여러 한방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김광석 거리’라고도 불리는 김광석길은 2010년 11월 대봉동 방천시장 안에 꾸며졌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했지만 금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구를 찾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꼽히는 이 길은 현재 대구 골목투어에 속해 길거리 공연, 벼룩시장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제 전국 각지의 고(故) 김광석 팬은 물론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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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동에 위치한 방천시장은 볼거리가 많은 재래시장으로 유명하다.4
김광석길은 방천시장 내에 위치한 명물 거리이다.해당 콘텐츠에 대한 기여도 기사+사진 기사 사진 오류수정